• [기타]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칼의 노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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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순천광양교차로신문
  • 18.10.16 09: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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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칼의 노래②

충무사에서 ‘칼의 노래’를 듣다



‘책 속 그곳에 가다’는 책을 계기로 시작되는 여행기로, 순천시민 이사야(필명)씨가 책 속 주인공들의 삶의 무대가 된 장소에 찾아가 느낀 소회들을 담는다.


이는 순천·광양 등 전남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이를 통해 지역 문화자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길 기대해본다.    

- 편집자 주-


김훈의 <칼의 노래>는 정유년 이순신이 투옥되고 풀려나 백의종군을 하면서부터 ‘신에게 남아 있다’는 12척으로 명량에서 적과 맞서고 퇴각하는 왜군의 부대에 맞선 순천 왜성전투와 마지막 노량해전을 붓의 울림으로 썼다. 


이를 듣고 찾아 간 ‘충무사’는 400년 전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실감나게 데려다 준다.


▲ 충무사 앞은 이순신 장군 공적비 등 그 사적을 자랑하는 비들이 즐비하다.


바람을 잠재우는 충무사


살아 도망친 왜군은 나름의 수확물을 조선에서 쓸어갔다. 축성기술자들은 일본에 가서도 성을 쌓고, 도공들은 도자기를 구웠으며 베어간 귀와 코는 교토의 어느 신사 아래 묻어 합장한 귀무덤이 됐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베어간 수많은 귀와 코의 무덤이 교토의 신사 아래, 평범한 주택가 미끄럼틀이 있는 어린이 놀이터 옆에 있다.


귀와 코가 베어져 남은 자들은 전투의 현장에 쓰러져 있다. 왜성전투가 있던 신성리는 그 후 100여 년 동안 사람들이 들어와 살지 않았다.


왜군뿐만 아니라 조선의 백성, 병사 할 것 없이 많은 죽음과 회한이 그 바다에 넘쳤다.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와 살지 못했고 한 세기 이상 그곳은 공허했고 아무도 살지 않았다.


전란 후 100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밤마다 왜귀가 출몰한다는 그 곳에 사당을 짓고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더니 마을이 안락해졌다고 한다.


1943년 태평양전쟁 말기에 사당을 허물고 위패를 말소한 사건은 일제 강점기 수난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해방 후 복원된 충무사는 송희립, 정운장군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충무사 계단에 서면 해자 물길 너머 남쪽 정면에 왜성의 천수각 기단석이 눈높이에서 바라다 보인다.


충무사 앞은 충무사준공사적비를 비롯해 이순신 장군 공적비 등 그 사적을 자랑하는 비들이 즐비하다. 그 비 중 거북모양 받침돌이 얹고 있는 비신 측면에 이런 글귀가 있다.


“그 때 그 날의 모습이 보이고 그 우렁찬 함성이 들리지 아니한가.”


칼의 울림


순천왜성에는 한 돌 한 돌 쌓았을 성벽마다 조선 민초들의 눈물과 배고픔과 두려움이 서렸다.


성을 다 쌓은 후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의 운명은 끌려가거나 코가 베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양지바른 성벽아래 이를 잡고 있는 왜군들의 눈엔 바다 건너 불어오는 남동풍에서 고향의 바람과 햇발을 그리워했다.


그들의 운명도 천운으로 돌아가거나 죽어서 귀가 베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전쟁에 어떻게 참가했는지 다들 하나씩의 사연들을 갖고 있다.


일본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때 끌려오다시피 한 군사들이 많았다는 거다. 왜성이 순천에 남아 있다는 것도 신기해했다.


왜군 장수는 전쟁의 뒤 끝을 생각하는 조바심이 있다. 전쟁 이후 일본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들은 고국에 돌아가서 또 다른 전쟁을 치워야만 했다.


명의 장수에겐 전공의 이득을 위한 정치적 사악함이 있다. 사대의 명분으로 파견을 오긴 했지만 그들에게 이 전쟁은 남의 나라 일이었다.


이순신의 칼끝에선 해군으로 바다에서 죽음으로 맞는 자연사가, 그들 각자의 몫으로 그곳에 얽혀 있다.


왜성의 천수각 터에 서면 거북선으로 덮쳐오던 바다는 이제 찾을 수 없지만 왜성의 소나무에서, 남은 성터에서, 건너편 충무사에서, 바닷물을 끌어들인 해자에서, 오키나와에서 불어오는 해풍에서, 그것에 흔들리는 억새풀에서 400년 전 조선에 불어 닥친 태풍과 마주칠 수 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칼의 노래 2권,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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