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의 ‘책 속 그곳’] 칼의 노래① 순천왜성에서 ‘칼의 노래’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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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순천광양교차로신문
  • 18.10.08 09: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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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책 속 그곳’] 칼의 노래①

순천왜성에서 ‘칼의 노래’를 듣다



‘책 속 그곳에 가다’는 책을 계기로 시작되는 여행기로, 순천시민 이사야(필명)씨가 책 속 주인공들의 삶의 무대가 된 장소에 찾아가 느낀 소회들을 담는다. 이는 순천·광양 등 전남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이를 통해 지역 문화자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길 기대해본다.                                                                    

- 편집자 주 -


김훈의 <칼의 노래>는 정유년 이순신이 투옥되고 풀려나 백의종군을 하면서부터 ‘신에게 남아 있다’는 12척으로 명량에서 적과 맞서고 퇴각하는 왜군의 부대에 맞선 순천 왜성전투와 마지막 노량해전을 붓의 울림으로 썼다. 


이 책으로 ‘김훈의 문장이 좋다’는 평은 아깝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김훈이 <칼의 노래>를 집필한 때와 이순신이 막바지 전투를 벌이던 때 둘은 쉰셋의 비슷한 연배였다. 


김훈은 이 글을 쓸 때 의식하고 있었을지는 모르나 나는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이순신의 마음을 그리도 잘 알아채는 이유를 손톱만큼이라도, 어디서라도 찾고 싶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듣고 찾아 간 ‘순천왜성’은 400년 전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실감나게 데려다 준다. 


순천왜성을 찾아 간 날은 오키나와로부터 올라온 태풍이 큐슈를 지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남동쪽 멀리 걸치고 있으나 눈은 시원하고 바람에선 해풍의 냄새가 났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은 경상해역의 진지마다 성을 쌓아 전략기지로 이용 했는데 전라도에 쌓은 단 하나의 왜성이 순천 신성리에 있다.


▲정왜기공도


정왜기공도


허물어진 성터만 남은 자리에 성벽과 해자를 보수하고 옛 흔적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 군대를 따라 온 종군화가가 그린 ‘정왜기공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왜기공도는 왜를 정벌하고 그 전공을 기록한 그림으로 1598년 당시 임진왜란 7년 전쟁을 끝내는 순천 왜성 전투의 장면을 자세히 담았다. 그러나 이는 명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현장에서 전쟁을 목격하고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의 왜성 주차장에는 이 정왜기공도가 바위에 그려졌는데, 3층으로 된 천수각과 겹겹이 쌓은 축성방식을 보여주는 일본성과 그 주위를 감싸는 해자, 그리고 왜군과 조명연합군의 육상전투와 이순신의 해상전투까지 명료하게 묘사하고 있다. 


1597년 정유재란 이전에 전라도 곡창지대는 비교적 무사했는데 명량해전의 패배로 바다를 통한 진격이 불가능해 진 왜군의 사정과 평양까지 진격했다 회군하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가 순천에 왜성을 구축하면서 순천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그해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성을 쌓는데 순천 인근에서 잡힌 포로들에게 축성공사를 시킨 것은 불 보듯 당연한 일이다. 


성이 완성되고 겨울이 지나면 병력을 집결해 침략을 완성하려던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회군을 준비하는데 그들을 막아선 이순신의 함대와 벌인 마지막 전투가 순천왜성 전투다. 


당시 순천은 조명연합군과 왜군이 싸운 국제전의 현장이었다.


순천왜성


400여 년 전 전투가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는 한가한 어촌으로 변모해 있다. 


왜성 전투가 벌어진 앞 바다는 매립되어 공단이 들어서고 장도와 송도는 육지와 한 몸이 됐고, 묘도는 아직 섬의 이름으로 남아 있지만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가 연결됨 에 따라 섬도 아닌 육지도 아닌 상태다. 


왜성으로 들어가는 길목 오른쪽은 해자의 흔적을 복구해서 가을 갈대와 억새가 공존한다.


세 겹으로 축성한 성답게 성지 터가 곳곳에 남아 있고, 휴일 오전 아버지와 아들이 캐치볼을 하러 오는 평화로운 곳이 아닐 수 없다. 


왜성 중앙으로 들어서면 연병장처럼 넓고 평평한 지대는 사방을 아우르기에 부족함이 없고 그 북쪽 가장 높은 곳에 천수각 터가 있다. 


성의 복원이 어디서부터 이뤄진 것이고 무엇까지 복원할진 알 수 없으나 딱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천수각 터 옆에 키 큰 소나무군락이다. 


이 소나무 군은 ‘정왜기공도’에 묘사된 모습과 그 용모가 매우 흡사하다. 400년 전 그 소나무일 확률은 적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유전자를 받았을 거라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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